카게무샤

영화정보
  • 카게무샤
  • 액션
  • 일본
  • 구로사와 아키라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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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무샤
줄거리
16세기 일본 천황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고 전국은 각 지방의 영주가 다스리는 이른바 전국시대였다. 일본의 동쪽 가히라는 지방을 통치하던 영주는 다케다 신겐이다. 그의 통치력과 군사력은 전국의 영주들을 압도하였고, 마침내 그는 쿄토로 상경하여 대장군의 되려는 야심으로 군대를 동원, 서쪽으로 진군한다. 하지만 오와리 지방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신흥 세력인 오다 노부나가를 쳐야만 했다. 그러나 도쿠가와와 오다의 연합군과 일대 격전을 앞두고 다케다 신겐은 적군 병사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직전 신겐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3년 간 적에게 노출시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신하들은 신겐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구해 가짜 신겐을 만든다.
감상평 1
국내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카게무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사소했던 반란 몇 개 빼면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아직 발바닥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가 하나 남아있었는데, 아버지
가 남긴 오사카 성에서 영주로 살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였다. 히데요리가 성인으로
장성하고(1596년생) 아직 일본의 서부에는 도요토미 가문의 은혜를 입은 장수들이 많이
남아있어 그들이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이룰지 몰랐다. 그래서 이에야스와 쇼군
이들을 제거할까 카게무샤 히데타다, 그리고 도쿠가와 가문의 가신들은 어떻게 하면 트집을 잡아
하다가 호코지 종명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전쟁을 벌이고야 말았다.
오사카 쪽에서도 이를 알고 열심히 낭인들을 포섭했다. 어쨌든 종명 사건이 생트집이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했고 세키가하라 이후 주인을 잃은 떠돌이무사들은 많았기에 돈으로
이들을 휘어잡는건 쉬웠다. 구도산에서 팔자에도 없는 승려 생활을 하던 유키무라에게도
병사를 고용할 약간의 재물이 도착했고, 유키무라는 이를 받아들여 카게무샤 오사카 측의 편지와
자신을 감시하던 사람들을 따돌리고 아들과 옛 가신들과 함께 오사카에 입성했다.
야사에는 잠자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나다가 오사카 성에 들어갔답니다' 라는 보고를
듣고 깜짝 놀라 '아버지냐 아들이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버지 마사유키가 워낙
계략에 능한 위인이기에 죽었다고 소문내고 숨어 있다 참전한걸 경계한 것인데 아들이라는
듣고 안심해서 잠을 청했다는데 이제 곧 그 아들에게 쓴맛을 제대로 보게 된다. 카게무샤 답을
이름높은 마사유키의 아들이고 다케다 군략에 정통했던 유키무라의 입성에 그를 반겼다.
곧 중요 장수의 진열에 낀 유키무라는 성문 밖에 사나다마루라 불리는 성채를 건설하고
거점간 연락/보급을 용이하게 했다. 곧 칸토의 대군이 오사카 성을 포위(오사카 겨울의 진)
했고 쌍방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금방 떨어지지는 않았다. 타이코 히데요시가 카게무샤 하지만 이에야스의 바람대로 오사카 성이
생전에 자랑했던 거성의 두꺼운 성벽, 깊은 해자, 거기에 보루 등으로 질서있게 연결된
방어망이 구축된데다 당시 대포는 성을 허물 수 있을만큼 강력하지 못해 도쿠가와 쪽의
피해가 자꾸 늘어났다. 사나다마루를 공격하던 다테 마사무네, 마츠다이라(에치젠), 마에다
의 부대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에야스는 오사카 성에 강화를 제의했다. 쇼군은 오사카 성에 있는 사람들 카게무샤 이렇게 되자
에게 벌을 주지 않고 용서하되 오사카 쪽은 공격자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해자를
메꾸고 바깥 보루와 성채(특히 사나다마루)를 철거한다는 내용이었다.
유키무라를 비롯한 주전파는 이에 반대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강화의 내용이 오사카 성
의 전력 약화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성의 실질적 총대장
어머니)는 이 조건을 수락하고 화의를 받아들였다. 칸토 측 카게무샤 이었던 요도기미(히데요리의
에서는 즉시 공사를 시작하여 해자를 메꾸고 눈엣가시였던 사나다마루도 철거하였다.
그렇게 비굴하게 산 평화는 채 1년도 가지 못했고 다시 오사카 여름의 진이라 불리는
전투가 시작됐다. 오사카 성은 말이 성이지 너른 벌판에 본성 하나만 우뚝 서 있는
상태였고 전투가 벌어질게 확실해지자 부랴부랴 보강공사를 하긴 했는데 공사의 진척이
별로 되지 않았다. 카게무샤
유키무라는 이제 목숨을 건 돌격밖에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신과 닮은 병사를
골라내 자신인 것처럼 꾸미고(카게무샤) 병력의 이동을 지켜보다 전위를 내보내고 잠시
소홀해진 이에야스와 히데타다의 본진에 기습 돌격을 감행했다. 한때 동군 총대장인
(쇼군 자리는 아들에게 물려줬지만 오고쇼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권력을 행사했다)
곳에 세우는 깃발 - 가 기울어질 정도로 카게무샤 이에야스의 곁에 세워둔 우마지루시 - 장수가 위치한
위기상황이 오기도 했다. 이는 히데타다 쪽도 마찬가지여서 아버지의 구원을 올 수
없어 한 때 동군 본진이 혼란에 빠졌으나, 워낙 동군의 숫자가 많았다. 곧 유키무라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네 번째 돌격을 위해 야스이 신사의 경내에서 쉬고 있던 유키무라
를 동군 일부 부대가 습격, 전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전사한 장남 외 다른 아들과 딸들은 에도 바쿠후 아래서 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카게무샤
비록 성을 바꾸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사면을 받아 사나다 성을 다시 되찾았고, 그 후손들은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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